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천 상무 FC (문단 편집) == 상무 축구단 == [[국군체육부대]] 소속 축구단이다. 축구 선수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K리그]]에서 뛸 수 있게 하며 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국방부 측의 명분과 더불어서 K리그의 구단 숫자 부족 해소를 위해 고심하던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프로 구단처럼 K리그에 참여하지만, 실상은 기존의 상무 축구단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역할을 하는 구단으로는 현재는 없어진 [[경찰 축구단]]이 있었다. 최초 연고 협약을 맺은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이며 이 시절에는 가끔씩 [[영광스포티움]]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본래 대한민국의 주요 3군인 육군, 공군, 해군이 각각 자체적으로 축구단을 운영해왔다.[* 한국전쟁 직후 아무래도 군 조직이 매우 커져있었기 때문에 공병단, 헌병감실, 특무부대, 첩보부대, 병참단 등 각 부대별로 축구단이 세분화되어 운영했고 자체적으로 군 축구대회까지 열 정도였다. 그러나 1969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 확장될 조짐이 보이자 국방부에서는 이들을 하나의 구단으로 통합해 육군 축구단으로 재출범시켰다. 반면 해군 축구단은 1973년 해병대 축구단을 이관받아 운영하게 된 것이 유일한 변화였고 공군 축구단은 1972년 창설 이후 1983년까지 변함없이 운영되어 왔다. 당시 3군 축구단은 각각 '''육군 웅비''', '''해군 해룡''', '''공군 성무'''라는 구단명을 사용했다.] 이 3군 축구단을 하나로 통합해 1984년 [[국군체육부대]] 예하 부대로 재창단한 구단이 바로 상무 축구단이다. 상무 축구단은 창단 원년인 1984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을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당시 기준에 따라 1985년 시즌 프로축구리그인 '[[K리그/1985년|축구대제전(수퍼리그)]]'에도 참가 자격을 얻어 프로 리그에 데뷔까지 했다.[* 전년도에 실업 축구 리그인 [[전국실업축구연맹전|실업축구 코리안리그]]의 우승 구단 자격으로 '편입'(일종의 승격)되어 참가했다. 반대로 전 시즌에 프로 리그 최하위 성적으로 강등 당한 구단은 [[국민은행 까치]]였다.] 다만 한 시즌만을 소화하고 다시 1986년부터 실업 축구 무대로 돌아와 2002년까지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을 소화했다. 특히 90년대가 상무의 전성기로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추계대회에서 4년 연속 우승하고 1999년과 2001년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하는 등, 본격적으로 이때부터 실업 축구의 강자로 우뚝 섰다. 2002년에 상무 1군이 광주와 연고 협약을 맺어 [[K리그/2003년|2003 시즌 K리그]]부터 [[광주 상무 불사조]]로 다시 K리그에 참가했다. 또한 2군은 [[이천 상무 FC]]라는 이름으로 2003년에 창설된 [[한국 내셔널리그|내셔널리그]]에 원년 구단 중 하나로 따로 참가하기 시작해[* 다만 '이천 상무'라는 구단의 창단은 2003년이 아닌 1999년으로 기록되는 듯하다. 또한 유니폼 색상은 주황색을 쓰던 광주 상무와 달리 광주 상무 출범 전부터 쓰던 파랑과 검정의 스트라이프 무늬 상의를 홈 유니폼으로, 흰색 상의를 원정 유니폼으로 사용했다. 하의는 동일하게 검정색. [[https://web.archive.org/web/20050206225703/http://www.k2league.co.kr:80/team/team8/page_01.asp|아카이브 링크]].] 2003 시즌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천 상무는 2005년까지 활동했다가 2006년부터 [[R리그|K리그 2군 리그]]로 무대를 옮겨 활동했다.[* 이 때 '이천 상무'가 아닌 '광주 상무 2군'으로 참가하였기에, 이천 상무는 해체 아닌 해체를 하게 됐다.] 2011년 부터 광주시에 [[광주 FC]]라는 독자적 시민 구단이 창단되고 상무는 상주시로 이전하면서 상주 상무로 재탄생했다. 상주에서 10년간 활동한 뒤 2021년 부로 김천시로 이전, 현재의 김천 상무가 되었다.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 리그에 참가하는 유일한 체육부대 구단이다.[* [[KBO 리그|야구]]와 [[한국프로농구|농구]]는 2군 리그에 참가 중이고 [[V리그|배구]]는 [[성남시]]를 연고로 [[상무 배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해서 [[신협]]에서 후원까지 한 적도 있으나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이후 신협과의 연도 끊고 기존의 여느 상무 산하 구단으로 재전환한 뒤에 [[세미프로]]로 내려갔다.][[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기록에서는 '''상무 축구단, 광주 상무, 상주 상무, 김천 상무를 모두 별개의 구단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록도 모두 분리되어 있다'''. 그 이유는 상무(국군체육부대)는 선수 공급처일 뿐 광주광역시, 상주시, 김천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구단 운영 주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적이 보잘 것 없는 무명 선수나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당당한 주전급으로 훌륭하게 육성하여 '''기회의 장'''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대]]에는 김명중, [[남궁도]], [[이동국]], [[조원희]], [[조재진]], [[2010년대]]에는 [[이근호]], [[이정협]], [[박준태(축구선수)|박준태]], [[박기동]], [[2020년대]]에는 [[주민규(축구선수)|주민규]], [[조규성]] 등이 대표적인 사례. 상무 축구단은 크게는 [[국군체육부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다른 종목 선수와의 교류가 많으며, 여기서 자칫 선수 생활을 하며 소홀히 할수 있던 부분을 타 종목과 비교하며 발견해 단련할 기회가 많다. 전역할때가 되면 입대 전보다 여러 면에서 성장한 선수가 돼서 돌아오는 경우도 꽤 잦다. [[K리그]]에서 [[K리그 드래프트|드래프트]]를 실시하던 시기, 드래프트를 참가하지 않는 구단이었다. 따라서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선수가 발탁되어 입대하게 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 병역의 특성상 남자 축구 선수의 경우 '''오히려 상무 입대가 일종의 특권이자 기회'''이기 때문에 자칫 드래프트에 참여하여 입대 선수를 선발할 경우 특혜 시비가 붙기 매우 쉬운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자 축구단인 [[보은 상무]]에서 발생했던 WK리그 드래프트로 인한 강제 입대 논란과는 상황이 다르다. 여자는 병역 의무가 없기 때문에 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에서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고, 남자는 어차피 언젠가는 병역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도 병역 해결을 위해 상무 입대 경쟁률이 치열한 상황에서 드래프트로 선발이 된다면 병역 문제 해결도 되니 선수 입장에선 오히려 이득이고 다른 남자 선수가 볼 때는 특혜가 될 수 있다.] 프로축구연맹에서 라이선스를 요구함에 따라 사단법인을 만들어 지자체 구단의 성격을 띄고있으나 군경 구단의 특수성 때문에 [[K리그]]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거나 [[대한축구협회 FA컵]]에서 우승을 한다해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없다. 만일 AFC 참가자격을 갖추게 된다면 리그 차상위 구단이 얻게 된다. 광주 상무 시절 대표 [[서포터즈]]로 1980이 있었지만 [[광주광역시]]가 신생 구단 창단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자 상무가 옮겨가기도 전에 보이콧 선언을 했다. [[경상북도]] [[상주시]]로 옮겨온 2010년도에는 공식적인 서포터즈가 없었으나 이후 상주의 공식 서포터즈인 GREAT PEOPLE이 생겼었다. 상주의 서포터즈가 없을 때 다른 구단 서포터즈에게는 [[건빵]] 소리를 들었다. 건빵 먹으라면서 구장에 건빵을 투척하거나 군필자들이 개구리 마크 달린 전투복을 입고 와서 놀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김천 상무의 공식서포터즈는 2022년 6월말에 생긴 수사불패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